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스터 A. 아서 (문단 편집) === 대통령으로서 === 대통령 [[제임스 A. 가필드]]는 콩클링파의 도움으로 집권했지만 콩클링의 발호를 경계하고 있었고, 그래서 콩클링파가 요구하는 자리를 거부하고 일부 인사만 임명했다. 자연히 콩클링파의 메신저 역이었던 '부통령' 아서는 가필드와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881년 7월에 가필드가 저격당했고 두 달 반의 투병 끝에 사망하자, 아서는 난데없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 때문에 아서의 후견인이나 다름없던 콩클링 일파의 발호가 우려되었지만[* 가필드가 저격당할 당시 아서는 콩클링과 같이 올버니에 있었다. 올버니가 어디냐면 콩클링의 지역구 당시 콩클링은 상원의원 재선을 노리고 있었다.] 아서는 가필드처럼 과감하게 콩클링 일파와의 관계를 끊었고 공화당 내부의 파벌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하지 않음으로써 편파적 인사관행의 고리를 끊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콩클링 일파에게는 평생 '[[배신자]]'라고 비난받았지만 반대로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이후 콩클링파는 머리였던 콩클링이 위세를 잃으며 무너졌지만, 아서가 퇴임 후 얼마 안되어 사망하자 의외로 콩클링 본인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고 한다. 아서 정권 최대의 업적은 바로 '펜들턴법(Pendleton Civil Service Act)'의 제정이다. 이것은 당시 판을 치던 연줄이나 계파에 따른 관직 등용, [[엽관제]]나 [[매관매직]]을 금지하고 정치적 거래 대신 공개시험을 치르게 한 것으로, 말하자면 미국판 [[행정고시]]를 도입한 것이며, 공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정당 조직에 내는 정치헌금을 금지했다. 아서 자신은 엽관제나 계파에 따른 관직 등용의 수혜자였지만 이런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많은 정치적 동료들을 격분시켰다. 이때 펜들턴법에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향해 날린 발언이 나름 유명하다. >'''"나는 대통령직에 있으면서 체스터 아서와 미합중국의 대통령은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소."''' >(Since I came here I have learned that Chester A. Arthur is one man and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is another.) 이 법안은 공직의 청렴도를 높였다는 의의가 있어서 '''미국 공무원 제도의 [[마그나 카르타]]'''로 일컬어진다. 또한 당시 큰 쟁점이 되고 있던 관세 논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는 공화당과 반대되는 의견인 [[관세]]율의 대폭 인하를 주장했지만 의회는 관세율을 조금만 인하할 것을 주장했다. 아서는 이 두 의견 중 고민하다가 의회의 법안에 서명했다. 그 외 업적으로는 [[미 해군]]을 강화하려고 노력했으며 전세계의 시간(표준시)을 통일된 기준에 맞추기 위해 표준시간 체계를 만드는 국제협의회를 조직했다. 이 표준시간 협의회는 나중에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협정 표준시 체계에 합의하여 현재까지 전 세계 [[시간대]]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취임 직후 백악관의 [[영 좋지 않은]] 상태에 경악하고, 허름한 백악관의 상태가 대통령의 권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 몇 개월간 관저 겸 집무실을 임시로 이전하고 대대적으로 백악관을 보수했다. 이때 화려한 백악관 전용 [[접시]] 등도 도입되었다. 아서 대통령의 개보수 이후 백악관은 별다른 보수 없이 계속 쓰이다가,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때 이르러 [[피아노]] 다리가 바닥을 뚫고 밑층 천장에 튀어나올 만큼 낡자 외벽을 제외하고 싹 헐고 내부를 완전히 신축했다. 외교적으로는 니카라과를 관통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 건설을 위해 [[니카라과]]와 협상했지만 이 계획은 상원에서 통과되지 않았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금융거래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남미]]와 [[북미]]의 단일통화를 개발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자잘한 일들을 했지만 펜들턴법 제정 외에는 크게 눈에 띄는 업적이나 효과를 본 업적이 없어서 그다지 존재감이 있는 대통령으로 기억되지는 않는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